1. 한 명이 쓴 하나의 기사가 웹에 올라온다.
  2. 그 하나의 기사를, 세 명의 기자가 읽고 맞춤법이나 비문 그리고 사실관계와 어긋난 것들을 검수한다.
  3. 세 명의 기자가 검수를 끝내면 그 다음 날이나 그렇지 않으면 며칠 뒤, 세상에 공개된다.


  4. 이것이 우리 회사의 일이며, 나의 일이다.



대학생 3학년이던 시절, 이런 일이 있었다. 술을 마시기 위한 어떤 당위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는 과의 중요한 행사로 2박 3일간 여수에 갔다. 신입생들을 포함해 약 50명에 가까운 인원이었다. 그 많은 사람이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낮부터 술을 마셔 댈 수는 없으니,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정들을 소화해야만 한다.

그렇게 낮의 일정이 끝나고 해가 넘어간 뒤, 과 특성상 백일장 같은 것을 했다. 어떤 시제를 주고, 수필이든 시든 쓰라고 했다. 나는 태어나서 라고는 초등학생 시절, 일기 쓰기 싫어서 집에 있는 시집의 시를 베껴 본 것이 전부다. 만약 자발성이라는 범주를 추가한다면 내가 시를 써본 횟수는 0에 수렴한다. 그렇다고 수필 같은 글은 잘하느냐. 지금도 못하지만, 당시에는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만 있었지 실천에 옮긴 적이 없는 무력한 아이였다. 한마디로, 잘 못 썼다.

그렇게 주어진 30분이 지나고, 다시 30분 간 교수들이 심사했다. 전부 해서 한 시간 뒤, 1등 2등 3등을 발표했다. 순위권에 든 사람들의 글은 약 50명의 사람 앞에서 읊어야 했다. 1, 2, 3등의 글이 역순으로 발표됐고, 그들의 글이 읊어졌다. 그 글들을 듣고, ‘나는 글을 쓸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한없이 우월한 존재들 같았다. 도대체 머릿속에서 무슨 짓을 하면 저런 단어가 나오며, 무슨 짓을 더 해야 저런 문장을 쓸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니, 나는 그냥 바보였다. 그 생각은 잠시 후 ‘나는 이 과에 온 지 얼마 안 됐으니까’라는 정신승리로 귀결되고 말았다. 그날 밤의 나는 열등한 존재였다.





너는 뭘 가장 잘하니? 나는 뭘 가장 잘하니?




우리 회사는 어쨌든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사람들의 집단이다. 매일 같이 머리를 쥐어짜며 글을 써야 하고, 그 글은 수만, 수십만의 사람들이 보게 된다. 그런 집단에 내가 편입되어 진다는 생각에 바짝 긴장했다. 몇 년 전 느꼈던 열등감을 다시 한 번 느낄 생각에.


처음으로 돌아가서, 하루에 동료의 기사를 다섯 개, 내지는 여섯 개까지 읽는다. 아직 몇 달 안 됐기는 하지만, 과 행사 첫 째날 밤에 느꼈던 열등감이나 경외심 따위의 감정을 느낀 적이 없다. 심지어는, 나보다 훨씬 나이도 많고 경험도 많은 선배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글에 대한 지적이나 수정해야 할 사항들에 대해 말을 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다. 내가 잘 났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일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뜻이다.

회사가 잘 되려면 회사에 맞는 사람을 써야 하고, 내가 잘하려면 내게 맞는 일을 해야 한다. 아직 내가 무슨 일이 맞는지 모른다면, 많은 경험을 통해 찾아야 한다. 어떤 외부 요인에 의해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일이 꽤 긴 시간 동안 반복되면, 그 일은 과감히 그만 해야 한다.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만약 당신이 아직 젊다면, 어려움을 겪는 근본적인 요인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자. 그런 생각을 가지고 어떤 일을 시작하게 되면, 적어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빠르고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20대 초반 시절 무수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서비스직은 무슨 짓을 해도 잘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덕분에 부모님의 서비스직 제안을 바람처럼 거절할 수 있었다.

지금 나라가 이 꼴이 된 것도 마찬가지다. 누가 방해를 자꾸 해서 못 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신이 무능했기 때문에 이렇게 되지 않았는가.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부디 ‘내가 잘하는 것이 뭐지?’라는 생각을 해 보기를 바란다. 먼저 말했지만, 아직 못 찾았다면 찾기 위해 그것이 무엇이든 투자해보자.

생각보다 답은 금방 나온다.




글. 성문경. 열등감 폭발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