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 사고를 해야할 때 막히는 경우가 많다. 아니 사실은 거의 대부분이 그렇다. 창의력이라는 말이 어느 덧 ‘노동’이라는 말과 동의어가 되어버린 사람들에게는 무슨 말인지 잘 알 것이다. 창의력은 ‘불현듯, 무작위적으로, 문득’ 떠오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주에서 날아오는 혜성들처럼 갑자기 퍽 하고 떨어지거나, 만화에서 클리셰처럼 사용되는, 전구가 ‘띵’ 하고 켜지는 장면을 떠올리는 것이다.

하지만 창의력이 떠오르는 순간을 아주 미세한 관점에서 바라보면 ‘파박’ 하고 생각이 튀어오르는 것이 맞지만 창의력이 생산되는 과정은 전혀 그렇지 않다. 노동도 그런 노동이 없다. 아주 고된 노동이 필요하고 중노동 수준의 많은 정신적 자극을 받는다. 모차르트 수준의 영재급 창의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클리셰도 이런 클리셰가 없지만, 이것만큼 탁월한 표현이 없다.



창의력을 위해 행해지는 몇 가지의 작업이 있다. 하나는 일단 주제를 정해야한다. 나는 주제라는 말 대신에 불교철학에서 쓰이는 ‘화두’라는 단어를 더 좋아한다. 무엇에 대해서 생각해야할 지, 무엇에 대해서 글을 써볼지, 우선 화두를 정해야 한다. 광고카피를 만들 때도 그랬고, 지금의 글을 쓰고 있을 때도 그렇다.

화두는 일종의 목적지이다. 내가 미국 워싱턴을 가겠다 싶으면 그 곳에 점 하나를 딱 하니 찍어 놓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곳에 갈 수 있는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방향은 어디로 가든 상관없다. 그것이 질문의 형태가 되었든, 명제의 형태가 되었든 상관없다. 자신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에 대해서 명확한 점을 찍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창의적 사고를 필요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 명확한 한 지점을 찍는 것 부터 머뭇거린다.



광고카피를 준비할 때, 노트북을 들고 카페에 들고 나간다. 오히려 북적거리는 곳이 몰입과 몰두를 방해할 것 같지만 머리는 화두에, 눈은 사람들에 맞춘다. 사람들을 보면서, 도시의 풍경을 보면서도 머리 속은 온통 그 생각뿐이다. 그러다보면 생각의 꼬리가 꼬리를 물고 그 꼬리를 타고 올라가다보면 용의 꼬리까지 올라가는 것이다.

그래서 창의적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은 자신을 절대 창의적이라고 포장하지 않는다. 창의라는 말은 결과적인 단어이지 그 과정까지 모두 놓고 보면 창의는 결국 이런 정신적 노동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뉴턴이 단순히 사과만을 보고 만유인력법칙을 발견했다. 뉴턴이 물리법칙에 대한 열정과 열망, 그 몰입이 없었다면 사과가 떨어지든 사과가 하늘로 솟구치는 결코 그 법칙을 알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조앤 롤링이 불우한 환경 안에서도 작가의 꿈을 버리지 않고, 스타벅스에서 매일이라도 떠오르지도 않는 소재를 찾으려 글을 쓰지 않았다면 기차역에서 이마에 번개모양 흉터를 본 소년을 보고도 해리포터는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창의력이라는 말이 로또같이 갑자기 뚝하고 떨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특히나 창의적 사고를 해야하는 커리어를 진행중인 사람이라면 창의력, 창의성에 겸손해야 한다. 창의력은 앞서 말한바와 같이 노동의 결과다. 적절한 질문과 방향성, 지속성이 설정되어 오랜 시간을 고민하다보면 그제사 겨우 하나가 나온다. (안나올때도 많지만) 그러니 자신이 창의적이라고 우쭐해 하지도 말아야 하지만, 창의적이지 않다고 우울해 할 필요도 없다.
집 앞에 우물을 하나 파려고 해도 몇날 몇일을 땅에 삽질해가며 파야한다. 그러니 명심하길 바란다.

창의력도 여느 삽질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글. 김이든. 군에서 육체적 삽질을 끝내고나니 정신적 삽질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