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의 막바지, 가슴을 짓누르는 막막한 부담감을 온 몸 가득 두툼히 껴안은 채 기숙사를 나와 양 옆으로 줄 서 있는 졸린 눈을 한 후배들 박수를 받으며 우리도 한 때는 수능을 치르러 갔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종종 그 토라진 새벽하늘을 잊을 수가 없다. 7시가 다 되도록 빛나고 있던 샛별과 그런 하늘을 감싸 안으며 터오던 동, 온 몸에 두르고도 남을 만큼의 하얀 입김을 후후 내 뿜으며 자꾸만 터져 나오려 하는 눈물을 애써 모른 척 새벽하늘과 정든 교정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마지막 외국어 영역이 끝났을 무렵 몇 명 되지도 않는 수험생들과 나란히 수험장을 떠나며 펑펑 울었다.


내 모든 ‘어제’들이 마지막 OMR지 한 장을 끝으로 마무리 되었다는 생각에, 알 수 없는 개운함과 섭섭함에 그 커다란 덩치로 숨어 울 곳을 찾아 다녔다. 그렇게 몇 분을 헤매다가 다다른 주차장에서 나는 아버지를 만나게 되었고, 18년을 별 말 없이 어색하게 살던 부자는 아마도 아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갓난아기적을 빼고는 가장 오랜 시간 그의 품에서 말없이 울었을 것이다. 나는 그 날 저녁 하늘을 기억한다. 눈길 닿는 모든 곳마다 황홀히 적셔놓은 노을의 발걸음이 터져나오는 추운 입김과는 다르게 무척이나 따스한 겨울이었다.






사실 어제 한 대학생을 만났다. 그녀는 내가 아는 나의 동기들 중에 가장 활기찬 사람이기도 하고, 가장 공부에 투자를 많이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사는 정도로 가깝지는 않으나 가끔 살아가는 얘기 살아온 얘기 할 정도의 비밀은 알고 있다. 또한 그녀는 늘 다른 친구들에게 용기를 심어줄 수 있는 좋은 말들을 입에 달고 살기 때문에 요즘에 쉽게 볼 수 없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그녀가 이 추운 겨울 한 밤중에 홀로 벤치에 앉아 엉엉 운다는 것은 썩 보기 좋은 일은 아니었다. 일절 술 냄새조차 나지 않는 맨 정신으로 그녀는 별을 마주한 채 울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를 보며 마실 맥주를 살 요량으로 나갔던 나는 그 자리에 앉아 맥주를 권하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또 떨어졌어. 나 진짜 무능한가봐. 취업이라는 거 되게 어려운 거였어.”


나는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무거움이었다.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기껏해야 토 할 때까지 스쿼트하기나 오버워치 마스터 티어 찍기, 만화책 읽고 울기, 영화 보고 더 펑펑 울기 등이 전부이기 때문이었다. 그럴 때는 그냥 들어주라는 누나의 말이 떠올라 묵묵히 듣고만 있었지만 으레 분위기가 어색해지면 그렇듯 우리는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C) 윤은준



시골에서 온 까닭에, 그것도 헤다 밤새는 별 하늘을 가진 목장에서 자란 나는 별자리를 조금 읽을 줄 안다. 그녀에게 별의 유래 몇 가지를 알려주고 내가 모르는 별은 그녀가 메르시, 토르비욘, 트레이서 이렇게 이름 짓다가 한 시간이 흘렀다. 눈물 자욱도 다 말라 붙고 코 끝에 남은 발그스름한 흔적 만이 훌쩍거렸다는 유일한 증거가 될 무렵, 우리는 민폐인 것도 모르고 크게 웃었다. 모든 것을 혼자 짊어지려 하는 청춘의 무거움도, 또 넘어서고 이겨내려 하지만 결국 틀에 갇혀 사는 청춘의 무지함도 모두 축복이 되는 밤이었다.






‘하늘을 봐 ! 우린 혼자가 아니야 !’ 사실 상식적으로 이렇게 사고할 수 없다. 운명에 의해, 혹은 운명 비슷한 어떤 것에 의해 탈곡기에 돌려지듯 탈탈 털린 정신력을 어떻게 하늘 한 번 보고 해결할 수 있겠는가. 만약 그것이 단번에 가능한 일이라면 한 번쯤은 조증을 의심해보는 것도 나름 합리적일 것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힘을 내라거나, 힘을 내라는 말이 어떻다거나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것을 경험하고 많은 것을 이뤄냈으며 많은 것을 알고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토록 신명나고 때로는 처참했던 내 스물 세 해를 아무리 되돌려보아도 상식적인 사고만으로는 살 수 없는 세상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 수 없을 때 판타지는 우리를 유혹하는 데, 당장 누군가 함께 모험을 떠나자고 말 걸지 않고 지하철 승강장 사이로 다른 세상에 갈 수 없다 해도 잊지 말아줬으면 할 것이 있다.


우리의 가장 큰 판타지는 아주 조금만 고개를 비틀어 바라다 본 저 위에 늘 떠있으며, 감싸고 있으며,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아주 조그만 상상력을 불어 넣으면 살아 움직이는 구름 거인들과 툴툴 거리며 눈을 만들어 내고 있을 선녀들, 겨울 밤엔 특히나 기대되는 썰매를 모는 할아버지 등 우리가 잃어버린 순수함의 모든 것이 아직 저 위에 있다.


오늘, 하늘이 어땠는 지 잠에 들기 전에 우리는 알고 있을까. 그런 거 기억하는 게 뭐 대단한 일이냐고 물을 수 있다면, 과연 뭐가 대단히 중요하고 원대한 일이었는지 확실히 말할 수 있을까. 잠시, 아주 잠시만 핸드폰을 잠금화면으로 돌려놓고 멍하니 하늘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해야할 일에 지쳐 사느라 당신은 또 지나쳐갔겠지만 오늘, 하늘은.




글. 임주혁. 하늘을 보는 현실주의자
사진. 윤은준. 몸으로 뛰는 감성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