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road to ruin there in your eyes
Under the cold streetlights
No tomorrow, no dead end in sight

네 눈에 비치는 폐허를 향한 긴 여정
차가운 가로등 아래서,
내일은 없어, 막다른 길도 없어
Foo fighters – long road to ruin




우울하기 짝이 없는 사진에, 우울하기 짝이 없는 가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다른 생각 역시 떠오르지 않는다. 전국 전도와 20만원만을 손에 움켜쥐고 국토종단에 성공했던 스무 살, 모든 길이 집으로 갈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늘 들떠 있었다. 머나먼 길을 보며 저 너머 미지의 경험에 늘 가슴이 설렜다.


한 해가 지나, 완전군장과 철모를 쓰고 바라본 길은 모두 지옥길이었다. 아지랑이가 타오르는 도로는 나를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20살의 초반도 끝나갈 무렵이어서 인지, 이제 변명으로 대신 사용할 만한 감성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 자꾸만 이 사진을 보며 짐작도 못한 깊이의 후회와 자기 연민에 잠기게 된다.



원래 의도와는 다르게 고3의 마음이 되어서 이 사진을 보는 것은 포기했다. 그들의 12년을 ‘수고했다’ 는 말 한 마디로 감히 만질 수 없기에 속 편하게 접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것이 부모님이었다.

‘당신들은 과연 이 사진을 어떻게 볼까.’
아마 어머니께 보여드리면 ‘뭣이여 아들이 찍은 것이여 뭣이 이렇게 우중충하대’ 하면서 더는 안보실 것이다. 아버지는 23년동안 내게 보인 지금도 알 수 없는 그 묘한 미소를 띄우시며 씨익 웃고 마실 것이다. 아마도 당신이 걸어온 쉰하고도 여섯 해의 길이 이보다도 어두웠을 까닭이다. 이런 상상들을 하나씩 덧붙이는 것이 사진을 보는 재미 중에 하나지만, 과연 나는 무슨 이유로 이 사진을 더듬으며 1시간이나 눈물을 흘린 걸까.



사실은, 찢어지고 닳아 헤져서 꿰맬 수 없지만 그렇다고 버리자니 불효자식이라며 욕하실 부모님이 떠올라 버릴 수 도 없는 애처로운 20살의 한 목숨이 떠오른다. 지나친 상상이지만 하늘이 달아난듯 통곡하는 어머니가 먼저 떠올랐다.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이를 위로하며 어금니를 꽉 깨문 채, 눈을 감고 혼돈 속으로 잠기는 아버지 역시 떠오른다. 무슨 인술을 쓴대도 그들을 위로할 방법은 없을 것이다. 그게 지금의 저 길을 보며 떠올리는 길이다.


하지만 간사하게도 그렇게 모질 마음이라면 차라리 사는 길을 택하곤 한다. 어떤 능력이 남과 다르게 특출나 세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도 아니고, 말 타는 것을 취미로 거국적인 업을 쌓아올 만큼 집안이 잘 사는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자신 있다는 글쓰기 마저 이 모양이니 말 다한거다.






Maybe the season
The colours change in the valley skies
Dear God I’ve sealed my fate
Running through hell, heaven can wait

계곡 속 하늘의 색이 변해가는
아마도 그 계절일 겁니다.
오 신이시여 나는 내 운명을 봉인하고
지옥으로 뛰어들어가겠습니다, 아직은 죽을 때가 아닙니다.
Foo fighters – long road to ruin



우습게도 온갖 낙엽 지는 이 계절의 내 고향은 무척이나 아름답다. 가장 먼저 달이 뜨는 산이라는 월출산 국립공원이 집 앞인데 눈을 돌리는 찰나도 아쉬울 정도의 간격으로 낙엽들의 색깔이 죄다 다르다. 수 년 동안 오른 산이라 눈을 감고도 오를 수 있다. 등산할 때마다 달라지는 각오에 아무리 생각해도 죽기에는 빌어먹을 정도로 아름다운 삶인 것 같다.

물론 각오가 달라진다고 당장 손 안에 쥔 지갑이 두꺼워지거나 집이 넓어지고 굴러갈 차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인 인생의 시름들이 모두 기권을 하고 달아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깐의 허무를 나는 사랑하고 아끼겠다. 그건 각오를 불태우라는 각성제일지도 모른다. 길게 탓하지 않겠다. 그리고 이 길을 걸을 때, 당신이 내 옆에 있든 있지 않든 나는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다. 돌아오는 이 계절에도 당신과 당신의 삶을 만날 수 있기를. 언제든지 우리 이 길 위에서 만나길. 우리, 쓰러지지 말자.



글. 임주혁. 언제든 쓰러지지 않을-
메인 사진. Nina L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