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 Team is Up, Down Team is Down

축구는 이변이 많은 스포츠다.
공은 쉴 새 없이 필드 위를 날아다니고 끊임없이 선수들은 몸을 부딪힌다. 저변이 넓어 워낙 많은 경기가 열린다. 통상 한 경기 후 사흘은 쉬어야 몸이 제대로 회복된다는데, 리그와 리그컵, 챔피언스리그와 유로파리그, 게다가 국가 대항전 등 경기가 쉴 새 없이 이어진다. 빅 리그 상위권 팀들은 심할 때면 일주일에 세 경기까지 치뤄야 한다. 체력이 남아나질 않는 일정 속에서 상대적으로 출전 대회가 적은 약팀들의 반란은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매주 꼭 한 두 경기씩 일어나서 사실 이변이라 하기도 어렵다. 축구에서 언더독의 비상은 꽤 흔한 일이다. 그렇다고 리그 전체 판도에는 또 큰 영향이 없다. 일정은 길고 스쿼드가 두꺼운 팀이 유리한 건 사실이니까. 약팀의 돌풍은 대체로 리그 초반을 지나 사그라든다. UTD와 DTD로 불리는, 결국 올라갈 팀 올라가고 내려올 팀 내려온다는 말처럼.



창단 132년 만에 처음으로 프리미어리그컵을 들게된 레스터시티
(C)fourfourtwo



그런데 2015-16 시즌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서는 믿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재작년까지 강등을 걱정하던 팀이 보란 듯 리그 우승을 차지해버린 것이다. 레스터가 처음 빅클럽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을 때 그건 이변이었다. 기나긴 리그 레이스가 끝나기 전 조기 우승을 확정 지었을 때 아무도 이변이란 단어를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우승할만한 팀이 우승했다고, 이견 없는 강팀이라고 입을 모아 칭찬했다. 바로 영리한 여우 군단 ‘레스터 시티’의 이야기다.






정말 가진 게 없던




그들의 우승배당은 믿음의 5000배였다.
(C)Foto.okezon




작년 프리미어 리그 개막 시 도박사들이 책정한 레스터 시티(이하 레스터)의 우승 확률은 고작 0.02%였다.
무려 5000분의 1 확률로 아무도 베팅하지 않을 도박이었다. 장난 삼아, 혹은 팬 심으로 돈 버리는 셈 치고 레스터의 우승에 돈을 걸었던 25명에게 지불된 총 배당금은 약 160억 8천만 원으로, 이는 다른 종목에서 전혀 나온 적 없던 수치라고 한다. 그만큼 레스터의 우승은 기적을 넘어 거짓말 수준이었다.


클라우디오 라니에리Claudio Ranieri 감독
레스터 시티의 감독 생활을 통해 현대 축구에서 감독의 비중이 얼마나 큰 지 보여주는 산 증인으로 불린다.
(C)wikimedia


  • [감독]

레스터의 수장 라니에리 감독은 늘 준수했지만 특별히 두각을 나타낸 적은 없었다. 무수한 우승경력 덕에 스페셜 원으로 불리는 무리뉴 감독은 라니에리를 두고 70 먹은 노인네일 따름이라며 우승 타이틀을 거머쥘 정신력이나 능력이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까지 했다. 하지만 레스터를 우승시킨 이후 첼시에서의 업적 등 지난 행보까지 재평가되는 중이다. 리빌딩에 능한 라니에리는 숨은 보석을 발굴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한다. 덕장의 면모로 선수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잠재력을 이끌어 내는 데에도 탁월한 능력을 갖추었다. 라니에리는 굉장한 독서광으로 알려져 있다. 언변에 깊이가 있고 결코 경거망동하지 않는다. 변화무쌍하진 않지만 일관되고 효율적인 전술을 운용한다.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우직하다. 라니에리가 레스터의 지휘봉을 잡았을 때만 해도 그의 성공을 기대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1부 리그 승격과 중위권 안착이면 충분히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라니에리는 오랜 지도자 생활을 거치며 단련된 내공으로 0.02%의 기적을 일구었다. 레스터가 우승하던 해, 라니에리를 조롱했던 무리뉴는 첼시로부터 감독직을 박탈당했다.



  • [선수]

리그 11경기 연속 골로 신기록을 갈아치운 간판 공격수 제이미 바디. 그는 공장 노동직을 겸하며 8부 리그에서 주급 30만 원을 받던 선수였다. 차근차근 7부, 6부, 5부 리그를 거치며 올라왔다. 프리미어 리그에서 24골을 박으며 팀의 우승을 이끌 재목으로 보던 이는 아무도 없었다. 87년생의 나이로 비교적 늦게 빛을 보았지만 그 임팩트만 틈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언론은 바디를 두고 신데렐라라고 표현했다. 영국 국가대표에도 발탁되어 골을 넣었다. 아스널을 비롯한 명문 팀들이 그를 욕심냈다. 하지만 바디는 레스터 잔류를 선택했다.

자리가 정해진 사람은 없다.
모든 것은 나에게 달렸으며, 나는 더 높은 곳을 향해 달려갈 뿐이다.

(C)hinckley times



2015-16 시즌 프리미어리그 최우수 선수로 뽑힌 리야드 마레즈. 발기술이 좋고 속도가 빠른 선수로 레스터 우승의 일등 공신 중 한 명이다. 그 역시 프랑스 2부 리그에서 활약하다가 레스터가 2부에 있던 시절 이적하여 승격과 잔류, 마침내 우승에 기여한다.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아 바르셀로나 링크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마레즈 역시 잔류를 선택했다.

실상 레스터의 중추였던 은골로 캉테. 아쉽게도 올해 첼시로 이적했다. 작은 체구지만 놀라운 활동력과 피지컬로 중원에서 상대 공격을 커트하고, 아군에게 양질의 패스를 공급한다. 캉테가 있어 바디와 마레즈가 마음 놓고 공격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올해, 레스터는 캉테의 빈자리를 절감하는 중이다.

가장 유명해진 이 셋 이외에도 대니 드링크워터, 마크 울 브라이튼, 웨스 모건, 로베르트 후트, 캐스퍼 슈마이켈 등 모든 선수가 기대 이상의 몫을 해주었다. 재미있는 부분은 이들 상당수가 빅클럽 적응에 실패했거나 하부리그에 소속되었던 선수였다는 점이다. 솔직히 언제 강등당해도 이상할 것 없던 팀이었다. 그런 그들이 맨유를 잡고, 첼시를 넘어, 맨시티를 누르고 프리미어리그 정상에 올랐다. 그건 분명한 이변이었다. 리그 중반까지도 사람들은 레스터의 선전을 축하하면서도 한 켠으로 DTD를 언급했다. 리그 후반기에 접어들고 레스터가 또다시 강팀들을 연달아 잡으며 승점을 굳건히 쌓아나가자 DTD는 UTU가 되었다. 레스터가 ‘올라갈 팀’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