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안창용



쓸모 있는 주제의
쓸 데 없는 이야기


쓸모 [명사] 1. 쓸만한 가치 2. 쓰이게 될 분야나 부분

눈을 떠 음악을 몇 곡 듣는다. 겨우 정신이 들면 욕조에 물을 받아 몸을 뉘인다. 스마트 폰으로 주요 기사를 훑으며 30분쯤 반신욕을 한다. 씻고 나와 아침을 차린다.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찌개를 끓인다. 아이가 먹을 국은 간을 하지 않고 따로 만든다. 그러는 새 아내와 아이가 일어난다. 가족과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한다. 아내가 아이 양치를 시키는 사이 커피를 내린다. 얼음을 꺼내고, 꺼내어져 빈 얼음 칸에 새 물을 얼린다. 텀블러에 아이스커피를 타 작업실로 쓰는 방에 들어간다. 문을 잠근다. 세 대의 모니터 앞에 앉는다. 오늘 할 일을 체크한다. 바로 일을 하진 않는다. 피파 17을 켜고 딱 두 게임을 돌린다. 게임이 끝나면 업무에 돌입한다. 일하다 지겨우면 한 번씩 축구 기사를 찾아본다. 골 장면 동영상을 한 두 개 보고 다시 일에 집중한다. 점심은 대체로 거르거나, 모니터 앞에 앉은 채 시리얼을 먹는다. 오후 다섯시 경 작업실을 나와 샤워를 한다. 아내가 저녁밥을 차리는 동안 아이와 논다. 밥상을 치우고 아이가 잠들 때까지 아내 부탁에 따라 행동한다. 아이와 아내가 잠들면 다시 모니터 앞에 앉아 부족한 업무량을 보충하거나, 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본다. 잠들기 전 강아지 밥과 물을 보충해준다. 자리에 누워 블루투스 스피커 볼륨을 작게 조절한다. 음악을 듣다 잠에 빠진다.


대체로 하루가 이렇게 지난다. 외출 없는 날엔 거의 그렇다. 그리고 잠들기 전 매일 같은 생각을 한다. 오늘 쓸데없는 일로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한 건 아닐까?

자기계발 리스트에 늘 미루기만 하는 과제들이 쌓여있다. 공부하고 싶은 게 많다. 딱히 발전을 추구하는 건 아니다. 그저 흥미를 느끼는 분야일 따름이다.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진 않은데 코딩은 잘 하고 싶다. 가수를 꿈꾸는 건 아니지만 작곡을 배우고 싶다. 식당을 차릴 생각은 없는데 조리사 자격을 취득하고 싶다. 학교 선생님이 되긴 너무 늦었지만 한국사 및 세계사 능력 검정시험 1급을 따고 싶다. 배우 할 생각은 없지만 연기 스터디 모임에 들고 싶다. 전시회 같은 건 필요 없으니 유화를 그리거나 조형을 해 보고 싶다.

원래 하는 일에서도 아직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먹고살기 위해 버는 일은 더 중요하다. 그래서 해보고 싶은 일들이 한없이 뒤로 밀린다. 당장 쓸모 있는 일을 더 하기 위해.


그래서 나는 쓸모 있는 인간이 되었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열네 살 김석규 학생의 쓸모 있는 발언

얼마 전, 얼굴 책 타임라인에서 한 게시물을 보았다. 똘똘하게 생긴 중학생 남자애가 수많은 청중 앞에서 강연을 하는 동영상 캡쳐 콘텐츠였다. 김석규라는 이름의 학생은 중학교 입학 후 첫 영어시험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고 한다. 학교에서 배운 적 없는 영어 단어가 시험에 출제된 것이 이유였다. 그런데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다들 학원에서 배웠다고 답했단다. 석규 학생은 학원을 다니지 않는다. 그래서 문제를 못 풀었다.

석규 학생은 공부를 싫어해서 학원에 다니지 않는 게 아니라, 도리어 좋아하는 공부를 더 많이 하기 위해 학원에 안 간다. 남는 시간 동안 인문학 공부도 하고 좋아하는 항공 분야에 대해 탐구할 수도 있다. 한데, 학원에 다니지 않아서 중학교 첫 시험을 망쳤다.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게 학교 시험에 나온다면 왜 학교에 나가야 하는 거지? 석규 학생은 학원에서 선행 수업을 하고 학교 수업 시간엔 몰래 학원 숙제를 하는 풍토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러면서 열네 살은 꿈을 만들어 가는 나이여야 한다고 말한다. 항공기 모형을 만들고 축구를 하면서 말이다. 친구들은 그런 석규 학생에게 쓸 데 없는 짓을 한다고 했다. 석규 학생은 당당히 반문한다.



“중학생이 어떻게 쓸모 있는 일만 하나요?”




열네 살은 쓸데없는 일을 해야 할 나이 아니냐고. 변해야 하는 건 자신이 아니라 학교라고. 중학생이 더 중학생 다뤄질 수 있는 교육을 만들어 달라고 어른들에게 부탁하며 강연을 마친다.


내 생각엔 니가 만드는 게 더 빠르겄다…




서른셋도 쓸데없는 일 좀 하면 안 되나요?

석규 학생의 발언은 다 큰 내 심장을 뛰게 했다. 어떻게 쓸모 있는 일만 하고 사느냐는 일침이 무기력증에 빠진 날 설레게 만들었다. 석규 학생에게 형이라고 부르라면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나보다 똑 부러지면 다 형이다.

서른셋이라고 뭐 다를까? 어른이냐 아니냐는 애매한 기준이다. 석규 학생에 비하면 어른이고 울 아버지에 비하면 애다. 적어도 무언가를 포기하기엔 분명 어린 나이다. 사실 쓸모 있는 일과 쓸 데 없는 일을 나누는 기준도 분명치 않다. 건설적인 삶을 추구하지만 모든 행동에 결과를 바랄 수는 없다. 항공 공부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놓고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항공 공부를 하며 체득한 어떤 것들이 모두 쓸모없었다고 할 수 있을까? 대학 전공이 꼭 해당분야 취직을 의미하지 않는 것처럼, 지금 하는 것들의 쓸모만 논하기에는 변칙적인 인생이다.

우리는 선택 없는 삶을 강요받는다. 선택지를 주는 척 하지만 문제 푸는 법을 교육받을 뿐. 초등학교부터 대학 졸업까지, 이후 취직하고 퇴사하고 재취업하는 그 모든 과정이 다 비슷하다. 쓸모 역시 이를 기반으로 판단된다.

대학 입시에 유리한 공부는 쓸모 있는 거다.
시를 읽고 눈물짓는 건 쓸모 없는 감정 낭비다.
시는 분석하는 거지 느끼는 게 아니다.

취업에 연관되는 스펙 쌓기는 쓸모 있는 거다.
사회 문제와 정치를 논하고 불의에 맞서는 건 쓸모 없는 시간 낭비다.
사회에 순응하는 거지 싸울 대상이 아니다.


자산 불리기에 유용한 투자는 쓸모 있는 거다.
이름 없는 기부나 사람의 가능성에 투자하는 건 쓸모 없는 탕진이다.
돈이 돈을 버는데 남 주는 거 아니다.

가치 판단 기준이 쓸모가 된 사회에서 눈 앞의 성과로 나타나지 않는 일들은 존중받지 못한다. 학생들은 수능 과목 이외의 공부를 배척당하고 어른들은 돈이 되지 않는 자기계발을 추구하기 어렵다. 덕을 보는 건 사교육 업체들과 숱한 외국어 학원들. 그렇게 사회가 인정한 쓸모 있는 사람으로 역량을 쌓고 세월이 흐르면 그 다음 쓸모 있는 과정을 거친 인재들에게 밀려 자리를 잃는다. 차별점이 없으니까. 다양성은 진작 죽었으니까.


(C)윤은준


쓸모를 정하는 나만의 기준이 필요하다

서른셋, 두 아이의 아빠. 쓸 데 있는 가장으로 살기 위해 쓸모 있는 일만 하며 산다. 그러려고 참 애쓴다. 자꾸 밀리는 자기계발 리스트의 항목들은 결코 이룰 수 없는 꿈의 목록이다. 가볍게 체험조차 해 보기 힘들다. 그 시간에 다른 쓸데 있는 일들을 하면 통장에 찍히는 입금 액수가 늘 테니까. 하지만 아직 살 날이 더 많은데, 어떻게 매 순간 쓸모 있는 일만 하고 살아가지? 나이를 먹을수록 나만큼 내 일을 잘하는 후배들이 생길 거고, 늙은 나는 쓸모 없어질 텐데. 그땐 무얼 하지?

혹시, 지금 쓸모없는 일을 좀 해두면 나중에 더 쓸모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김석규 학생 말이 구구절절 옳지만, 그의 친구들 말도 틀린 건 아니다. 석규 학생의 친구들은 자신 기준에서 쓸모 있는 일을 할 뿐. 석규 학생이 좀 더 트인 아이라서 남다른 면모를 보이는 건 그 자체로만 칭찬할 일이다. 다른 학생들을 비교 하위에 둘 필요는 없다. 다만, 쓸모는 각자 기준으로 정해져야 한다. 석규 학생은 그걸 안다. 적어도 그 기준이 사회통념에 의한 것은 아니길 바란다. 좋은 대학에 가야 훌륭한 어른이 돼요. 대기업에 입사해야 미래가 밝아요. 이런 기준은 실상 강요잖은가?

학교와 직장이 정해주는 시간표 속에서 살아온 나날 들은 능동성을 앗아갔다. 할 일을 스스로 정한다는 건 의외로 난감하다. 하지만 나만의 기준을 세울 수 있다면 남들과 다른 차별점을 갖게 될 거다. 쓸모를 판단하는 중심에는 각자의 가치관이 자리 잡아야 한다. 남들에게 쓸모없어도 내겐 쓸모 있는 일이 무언지 알아야 한다. 그걸 알기 위해 자신을 먼저 알아야 하고.

결국 쓸모란, 나를 탐구하는 과정으로부터 발견해야 한다. 꿈이 거창할 필요는 없지만 남다를 이유는 있다. 특별한 사람이 되라는 게 아니다. 남들 대부분 사회 통념 속에서 일관된 꿈을 꾸기에, 궤도에서 한 발만 떨어져 진정 자신이 원하는 걸 들여다 볼 수 있다면 충분하다.

업무 중간에 딴짓을 하다 김석규 학생을 만났다. 쓸모없는 행동이 쓸만한 결과를 가져다준 셈이다. 지금 하는 쓸모없는 짓이 언젠가 당신의 쓸모를 높여 줄 재료가 될지 모른다. 그저 흥미에 시간을 할애해도 좋다. 무언가를 이루려 집착 말고 아무 기대도 말자. 쓸모를 고려하지 않고 순전히 재미로만 좋아하는 일을 파고들어보자. 그 순간이 바로 놀라운 변화의 시작일런지도 모른다.

그리고 솔직히, 고민한다고 시간만 흘려보내지 별 대단한 일 안 하는 것 다 안다. 열네 살 석규든, 서른셋 창용이든, 몇 살의 누구든 쓸 데 없는 일을 할 나이다. 게으름을 꾸짖을 때 흔히, 어차피 죽을 거 왜 사냐, 는 비유를 들 곤 한다. 그리 따지면 모든 일이 결국 다 쓸 데 없는 행위다. 그러니까, 쓸모를 기준으로 시간의 유용성을 재는 건 그야말로 쓰잘데기 없는 짓.

당장 시도조차 못 하는 일은 나중에도 하기 어렵다.

글. 안창용. 쓸모있는/쓸데없는 그냥 안창용.
메인 사진. Vanessa Bumbeers